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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향해 폭풍질주 했던 어느 젊은 동독 군인의 이야기

뷰포인트 2016.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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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냉전 시대의 서막이 올랐습니다. 1961년 독일의 베를린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국가의 이익을 위해 장벽이 세워지기 시작했고, 그 주변은 날이 선 철조망으로 가로막혔습니다.

 

 

장벽이 세워지던 그때 19세의 동갑내기 두 젊은이는 자신들도 모르게 역사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장벽을 향해 질주하는 모습으로, 또 다른 한 사람은 그 모습을 필름에 담는 것으로 말입니다. 스페인의 빈티지 에브리데이에 소개된 이 한 장의 사진은 아주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냉전 시대의 상징이 된 이 사진은 자유를 위해 동베를린을 탈출했던 '콘라드 슈만(Conrad Schumann)'이 서베를린 방향으로 힘차게 질주하고 있었고, 반대편에서는 '페터 라이빙(Peter Leibing)'이 셔터를 누르고 있었습니다.

 

1961년 8월 19일 열아홉 살의 사진작가 페터 라이빙은 서독 경찰로부터 한 가지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콘라드 슈만이라는 동독의 젊은 군인 한 명이 서독 경찰의 도움으로 극비 망명을 한다는 내용이었죠.

 

 

탈출을 시도했던 그 날 동독의 국경 수비대에 몸을 담고 있던 콘라드 슈만은 베를린 장벽 근처를 어슬렁거리고 있었습니다. 서독 경찰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겁니다. 그러다 한쪽 철조망이 약간 낮아진 것을 신호로 기회를 노리던 그는 힘차게 내달렸습니다.

 

당시 장벽 근처에는 수많은 사진 기자들이 몰려 있었지만, 다음날 신문 1면을 장식한 사진은 오직 페터 라이빙의 사진뿐이었습니다. 불과 3~4초 사이에 찍은 사진 한 장으로 말입니다.

 

(사진 - 1981년 콘라드 슈만의 모습)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슈만은 동독에 있던 가족들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서독에서는 영웅이었지만, 동독에서는 배신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심지어 가족들까지 그를 외면할 정도였으니까요.

 

결국 콘라드 슈만은 1998년 56세의 나이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유서는 없었지만 모두들 그 이유는 알 수 있었죠. 콘라드 슈만 역시 베를린 장벽의 수많은 희생자 중에 한 명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자유를 향해 질주했던 그의 사진 '자유를 향한 도약'은 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억유산에 등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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