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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같았던 일주일!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군대 영창 (下)

뷰포인트 2016.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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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편을 안 보신 상남자분들은 상편을 먼저 보고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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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당시 제가 근무하던 중대 전체가 전방 사단에 파견부대로 나가 있었는데, 사단 보병대대의 땅 한쪽을 빌려 마치 셋방살이하는 것처럼 얹혀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저희 막사 옆에 있는 사단 땅개(보병) 중대의 중대장과 저희 중대장은 톰과 제리처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죠. 아마도 자기네 땅을 뺏겼다? 뭐 이런 느낌이었나 봅니다.

 

 

중대장들의 영향으로 중대원들끼리도 사이가 썩 좋지 않아서 중대대항 축구 경기라도 하는 날에는 진짜 무슨 전쟁이 난 것처럼 전투 축구를 벌였습니다.

 

 

이기는 날에는 북과 꽹과리를 치며 미친놈들처럼 축제를 벌였고, 지는 날에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혼돈 속에서 지내야만 했습니다.

 

아무튼, 사단 땅개 중대와 저희 통신 중대는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뾰로롱)

 

 

보급계 사수의 은혜로운 자비를 느끼며 전에는 미처 경험하지 못했던 라면의 신세계를 깊이 탐구하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확 열렸습니다.

 

라면에 코를 쳐박고 정신없이 먹고 있던 저는 열린 문 쪽을 바라보았고, 그곳에는 땅개 중대장이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채 저희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이 (삐삐-)들 아주 그냥 군대에 캠핑 왔지? 와하하하"

 

 

그렇게 짧은 한마디와 악마 같은 웃음을 남긴 채 땅개 중대장은 바람처럼 사라졌습니다. 응? 뭐지? 당연히 엄청나게 깨질 줄 알았는데 그냥 말 한마디 하고 사라지다니.

 

"이건 분명 조상님이 우리를 보살피고 있는 게야"라는 헛소리를 해대면서 저희는 먹던 라면을 얼른 치우고 끽해야 군장 뺑뺑이나 돌 거라며 정신 승리를 하고 있었죠.

 

 

하지만, 조상님이 휴가를 가신 것인지 보살핌 따위는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땅개 중대장이 자기 대대장한테 통신 애들 캠핑왔다며 쪼르르 달려가서 꼰지른 거였습니다.

 

당연히 땅개 대대장은 저희 대대장한테 "너희 애들 파견 나온 줄 알았더니 캠핑왔더라?"라고 이야기를 했겠죠. '캠핑온 해리포터와 라면의 돌' 프롤로그가 그렇게 쓰여가고 있을 때쯤.

 

 

창고 정리를 마치고 나서는데 저 멀리 위병소에서 우리 대대 1호 차가 보이는 게 아니겠습니까? 대대에서 우리 중대 거리가 1시간이 넘기 때문에 평소에 대대장이 잘 오지 않았거든요.

 

직감적으로 저희는 '1호 차가 뜬 이상 올 것이 왔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 보급창고 옆에는 통신 장비 창고가 있었는데 통신 장비가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비싼 장비는 수천만 원까지 합니다.

 

 

만약에 보급창고에서 즐거운 캠핑을 즐기며 라면을 끓여 처먹다가 불이라도 나면 20억이 넘는 통신 장비까지 잿더미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거죠.

 

당연히 저희 중대장은 대대장한테 완전 개박살이 났고, 바로 다음 날 고참과 저는 세면 백에 속옷 한 벌 꼴랑 넣고 사단 헌병대 영창에 '근무 태만'이라는 죄명으로 6박 7일간 입소를 하게 됩니다.

 

참고 영창에 입소한 기간은 군 생활을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전역도 그 기간만큼 미뤄집니다.

 

 

사단 헌병대 영창에 입소하는 날 제 기분은 훈련소에 입대하던 그 날과 똑같았습니다. 왠지 모를 두려움과 공포, 비참함이 뒤섞여 가슴을 아주 무겁게 짓눌렀죠.

 

하지만, 행보관은 마치 저승사자처럼 생글생글 웃으면서 "즐거운 시간 보내다 왕~" 이상한 콧소리까지 내며 어깨를 토닥여 주더라고요. 이래서 하극상이 나는구나 싶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행보관과 바이 짜이찌엔한 후 헌병들에게 인도되어 영창에 들어갔습니다.

 

 

영창에 들어가기 전에 가장 먼저 소지품 검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요대, 군번줄, 전투화 끈을 전부 압수합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자살 방지를 위해서라고 하더군요.

 

소지품 검사가 끝나면 양팔을 벌리고 철조망과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영창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 후 기본적인 생활수칙 등을 간단하게 교육받고 각자 다른 감방으로 처넣어지죠.

 

 

일단 영창에 들어가면 사람 취급을 못 받습니다. 근무를 서는 헌병들이나 간혹 나타나는 간부들이 영창에 들어온 인원들을 그냥 범죄자로 취급합니다. 욕도 아주 바가지로 먹어요.

 

영창에는 구타나 가혹 행위 때문에 들어온 상병, 병장들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저나 고참처럼 캠핑 놀이하며 라면을 끓여 처먹다가 들어온 군인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영창에 있을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이 뭐냐면 철창 안에서 온종일 양반다리로 각 잡고 앉아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게 첫날은 그럭저럭 괜찮은데 둘째 날부터는 아주 그냥 무릎이 작살나는 느낌입니다.

 

물론 요령껏 다리를 펴주기도 하는데요. 마법에 걸린 헌병들, 특히 마법에 걸린 계급 낮은 헌병들이 근무서는 날에는 얄짤없이 FM대로 각 잡고 앉아 있어야 합니다.

 

 

밥 먹을 때도 아주 가관인데 양동이에 밥이랑 반찬, 국을 영창에 구금된 인원들이 돌아가며 취사장에 가서 가져옵니다. 설거지도 당번이 정해져서 돌아가며 하죠. 그런데 설거지할 때 세수비누를 쓴다는 겁니다.

 

빨래비누는 봤어도 세수할 때나 쓰는 비누로 설거지하는 것을 처음 봤을 때는 정말로 문화충격 먹었습니다. 식판이 제대로 안 닦여서 밥 먹을 때 비누 맛이 나는데도 배고프니까 국물 하나 안 남기고 다 비우게 되더군요.

 

 

또, 불침번이 필요 없는 데도 굳이 깨워서 한 시간씩 세웁니다. 불침번 설 때는 차려자세에서 고개를 아래로 향하고 한 시간 동안 서 있는 게 다예요. 좀 황당하죠?

 

그래도 영창생활에서 즐거운 순간이 있었다면 작업을 나갔던 시간입니다. 헌병대는 규모에 비해서 인원수가 적기 때문에 작업할 인원이 많이 부족하거든요.

 

 

'작업 나갈 사람 손'하면 잽싸게 범죄명과 관등성명을 대면서 손을 들어야 나갈 수 있습니다. 빡세게 작업을 해도 몸을 움직일 수 있으니까 훨씬 편하죠.

 

운 좋게 맘씨 좋은 헌병이라도 만나면 우리 때문에 너희가 고생한다며 담배도 한 대씩 피우게 해줍니다. 간식을 줄 때도 있고요.

 

 

그 외에 시간에는 하루종일 앉아서 반성을 하며 보내야 합니다. 벌써 몇년 전 이야기라 지금 영창은 어떨지 모르겠네요.

 

제가 영창에서 일주일간 생활하면서 정말 뼈저리게 느낀 것이 하나 있다면 '사람은 죄를 짓고 살면 안 되는구나'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영창도 이 정도인데 교도소는 어떻겠어요? 아마 더 심하면 심했지 절대 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요. 상남자 여러분! 우리는 죄짓고 살지 맙시다. 아시겠죵?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90도 배꼽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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