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군사반란과 지존파 사건의 공통점
1979년 12월 12일 군대 내 불법 사조직인 하나회의 수장 전두환은 하나회의 주요 지휘관들과 함께 수도방위사령부 30경비단에 집합해 군사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육군 특수전사령부의 1공수여단을 동원해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점령했는데요.
그 후 3공수여단을 투입해 특전사령부 본부건물을 습격해 당시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하고, 헌병대 등을 장악하면서 진압군이 힘 한번 제대로 못 써보고 신군부가 탄생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추대되면서 정권을 빼앗는 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군부독재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아주 잘 보여주었죠. 깨끗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워 전두환이 만든 삼청교육대는 죄 없는 일반인들까지 잡혀가 고문과 같은 교육훈련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심지어 죽어 나가는 사람들까지 있었다고 하는데요.
반면, 지존파 사건은 리더 김기환을 포함 총 6명이 모여 1993년 7월부터 1994년 9월까지 5명을 연쇄 살인한 사건입니다. 90년대 중반 대한민국은 '지존파 사건'으로 굉장히 떠들썩했습니다. 그 시절은 지금처럼 엽기적인 강력범죄가 많지 않던 시절이라 그 파장은 정말 어마어마했죠.
이들이 밝힌 범행의 목적은 빈부 격차의 상대적 박탈감에서 오는 부자들에 대한 증오였지만, 실제 피해자들은 부유층이 아닌 평범한 시민들이었습니다. 삐뚤어진 증오의 씨앗은 무고한 생명을 앗아가 버렸죠. 다시는 없어야 할 정말 끔찍한 사건인데요.
1212 군사반란과 지존파 사건은 흉악한 범죄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가장 큰 차이점이 하나 있습니다.
지존파는 3차까지 간 재판에서 대법원의 최종 판결로 지존파 6명 전원은 사형을 선고받고, 1995년 11월 2일 사형이 집행됐습니다. 그런데 1212 군사반란의 주범인 전두환은 어떻게 됐을까요?
- 1995년 7월 18일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검찰 1212 군사반란 및 518 민주화운동 관련자 전원 불기소 처분.
- 1996년 8월 26일
"진정한 국민화합을 이루기 위해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 518 특별법 제정. 전두환 사형 및 내란 종사자 유죄 판결.
- 1996년 12월 16일
"항복한 장수는 죽일 수 없다" 전두환 사형에서 무기징역형으로 대법원 감형 확정.
- 1997년 12월 20일
"국민 대통합을 이뤄 국난을 극복하자"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와 김영삼 대통령은 전두환 특별사면에 합의.
출소 후 한 기자가 전두환에게 교도소 생활의 소감을 묻자 "교도소 생활이라는 게... 여러분들은 교도소 가지 마쇼. 고것만 내가 얘기하고 싶습니다. 하하하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수년이 지난 어느 날 전두환은 이런 말을 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나한테 대해서는 아직 감정이 안 좋은가 봐~ 나한테 당해(?)보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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