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때 그 시절, 대한민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삼청교육대'

뷰포인트 2017. 1. 10.
반응형

 

과거 대한민국에는 사회에 해를 끼친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을 모아 엄격한 훈련을 통해 교화를 시키겠다는 것을 목적으로 한 '삼청교육대'라는 이름의 악명 높은 강제 수용소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북한의 아오지 탄광과 비슷한 아주 끔찍한 곳이었다고 하는데요.

 

 

 

1980년 여름,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지시로 '사회악일소 특별조치 및 계엄 포고령, 삼청 5호 계획'에 따라 조직폭력배, 강도, 불온선동자 등을 비롯해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을 남녀 구분 없이 무조건 잡아들여 삼청교육대로 집어넣었습니다.

 

 

경찰에 의해 검거된 사람들은 4가지 등급으로 분류돼 형식상의 심사 과정을 거쳐 잡혀 온 사람들 중 B, C등급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삼청교육대로 들어가게 되었는데요.

 

 

1. A등급(군사재판) : 조직폭력배 두목 및 간부/행동대원, 상습폭력, 전과 2범 이상, 흉기 소지자, 강도, 절도, 밀수, 마약 현행범

 

2. B등급(삼청교육대) : 폭력배, 사기꾼, 불량 서클 회원, 전과자

 

3. C등급(삼청교육대) : 폭력 사실이 경미한 자

 

4. D등급(훈방조치) : 초범, 정상적인 학생, 직업과 거주지가 확실한 자

 

 

하지만, 그 당시에는 불심검문 시 신분증만 없어도 바로 삼청교육대에 끌려갔을 정도로 인권유린이 극에 달했었죠. 명목상으로는 범죄자 소탕과 교화지만, 실제로 1/3 정도 되는 사람들은 죄 없는 학생들과 선량한 시민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영문도 모른 채 무차별적으로 붙잡혀가 군대에서 1년에 한 번씩 하는 유격 훈련보다 더 힘든 삼청의 교육 훈련과 가혹 행위를 견뎌내야 했던 것이죠. 심지어 정부를 욕하기만 해도 잡혀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잘못한 것도 없는데 무언가를 계속 반성해야만 했습니다.

 

 

초기에 입소한 약 4만여 명의 인원들은 여러 군부대로 나뉜 삼청교육대에서 4주간의 훈련을 받고 풀려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4주가 지나도 교육생들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혹독한 순화 교육프로그램을 모두 소화해야만 했죠. 어떤 사람들은 근로봉사라는 이름으로 노역에 동원되기까지 했습니다.

 

 

 

당시 삼청교육대가 얼마나 악명이 높았냐면 교관들의 폭행으로 인한 사망자만 무려 54명에 달했고, 마치 고문과 같은 가혹 행위와 훈련은 말할 것도 없었죠. 또한, 정부가 잡아들인 전체 검거자 중 전과가 없는 사람은 35.9%에 이르렀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한 마디로 죄 없는 사람들이 잡혀간 것입니다.

 

 

그 시절을 경험하신 어르신들의 말씀에 따르면 삼청교육대의 시옷(ㅅ) 글자만 나와도 우는 아이가 울음을 뚝 그칠 정도로 공포스러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삼청교육대의 후유증으로 인한 정신이상 즉, 미쳐버린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다고 하는데요. 이것도 공식적으로 집계된 숫자일 뿐이지 이보다 더 심각했을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당시 삼청교육대의 생활수칙 1조가 '선동 및 도망치는 자는 사살한다'였거든요. 아마 명분을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었을 겁니다.

 

 

삼청교육대는 사회에 해가 되는 인간들을 교화시켜 좋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대의적인 명분과는 다르게 수많은 일반인들이 제5공화국의 광기에 의해 희생되었던 현대사의 슬픈 비극 중 하나입니다. 정권교체기에 나타나는 국민들의 불안과 불만을 오로지 권력의 힘으로만 찍어누르는 독재 권력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아주 잘 보여주는 잊지 말아야 할 과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