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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일본을 공포에 떨게 한 폭주족의 역사 (下편)

뷰포인트 2018.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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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상/하편으로 나뉘는 연재물입니다.※

 

70년대 일본을 공포에 떨게 한 폭주족의 역사 (上편)

 

당시 폭주족들은 정말 비열하기가 짝을 찾을 수 없을 정도였는데요. 적대 관계에 있는 연합이나 폭주족의 총장, 부총장을 납치해 폭행과 고문 후 발가벗겨 놓고 사진을 찍는 등 최고의 모욕과 수치심을 줬습니다.

 

그렇게 찍힌 사진은 폭주족 매거진에 실려 폭주족으로서는 창피해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하게끔 했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치욕스러운 사진을 가지고 협박해 돈을 뜯어내기도 했는데요. 혐오스러운 악행만을 고집하며 괴롭혔습니다.

 

특히 미타테 신이치의 미소 뒤에 숨겨진 잔인함은 악마의 그것과도 같았는데요. 손톱/발톱 뽑기, 몸에 못 박기, 담뱃불로 온몸 지지기 등 중세시대 역사서에나 기록되어 있는 고문을 하기로 유명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약과에 불과하고,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악마 같은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했습니다.

 

심지어 적대관계에 놓인 총장의 가족들까지 해를 입히기도 했으니까요. 미타테 신이치는 인간이 가장 불편해하는 심리 중 하나인 ‘공포’를 주입하는 방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사이코 중에서도 매우 높은 클래스의 사이코였죠.

 

흥미로운 점은 자신이 소속된 관동연합의 선배, 후배, 동갑내기들한테는 매우 친절하게 대해줬다고 하는데요. 당시 관동연합에 몸담고 있던 폭주족들 사이에서는 “미타테 신이치와 적대관계가 아닌 게 우리 인생 최고의 행운이다.”라는 말이 돌았을 정도였답니다.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2004년 11월 1일 일본의 도로교통법이 바뀌면서 그전까지 필요했던 피해자의 증언 없이도 폭주족들을 잡아들일 수 있게 되죠. 세력이 컸던 폭주족 연합들은 조직폭력배의 모습으로 진화했지만, 사실상 일본 폭주족의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하는 ‘사이코 보존의 법칙’은 일본에서도 작동되었기 때문에 미타테 신이치는 여전히 악행을 일삼았고, 2011년 ‘롯폰기 클럽 습격 살인사건’의 주범 격으로 지목돼 경찰에게 쫓기는 도망자 신세로 전락하고 맙니다.

 

(▲인터폴에 의해 국제수배가 내려진 미타테 신이치)

 

그러나 미타테 신이치의 쓸데없이 좋은 머리 때문이었는지 사건 직후 바로 출국해 한국과 중국을 거쳐 필리핀으로 도주하는데요. 열이 받을 대로 받은 일본 경찰은 근래에 보기 드물게 나쁜 놈이니 꼭 잡아야 한다며 인터폴에 요청해 국제수배를 때립니다.

 

더불어 필리핀 경찰과 공조해 미타테 신이치가 숨어 있는 은신처까지 찾아내고 마는데요. 안타깝게도 그를 잡지는 못했습니다. 그 후 몇 년째 그의 행적을 좇고 있는 가운데 미타테 신이치는 보디가드를 곁에 두고 동남아 지역 여러 나라의 고급 별장을 돌아다니며 숨어 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재일교포 김강홍)

 

그리고 일본 폭주족의 역사에서 아주 흥미로운 인물이 또 한 명 있는데요. 2000년대 중반 관동연합의 실질적 리더였던 재일교포 한국인 김강홍(가네무라 다케히로)입니다.

 

폭력단 ‘신주쿠 잭스’ 출신으로 관동연합에 속해 있던 그는 싸움으로만 따지면 관동연합 랭킹 1위라고 할 만큼 대단했다는데요. 2008년 적대 세력에 의해 거리에서 몰매를 맞아 죽습니다. 당시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두개골이 깨지고 안구가 튀어나왔을 정도로 참혹했다고 하죠.

 

독자분들의 이해를 돕고, 지루함을 줄이기 위해 인물을 중심으로 일본 폭주족의 역사를 짧게나마 살펴봤는데요.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인물의 비열함과 흉악함이 뒤섞인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폭력물 만화에서 그려지는 그들의 모습은 의리 있고 멋있어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철저하게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는 흉악한 범죄자들일 뿐입니다.

 

사진 출처=일본 온라인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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