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설렁탕 한 그릇은 마치 잘 달인 보약을 먹은 것처럼 건강해지는 느낌이 드는데요. 설렁탕의 맛은 어디서 먹나 비슷비슷하지만, 잘 끓인 설렁탕을 내어주는 곳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늘은 수요미식회와 미쉐린 가이드에 오른 100년 전통의 종로 '이문설농탕'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2017 미쉐린 가이드 서울에서는 이문설농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1900년대 초, 한국의 첫 음식점으로 공식등록된 종로구 견지동의 이문설농탕.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이곳은 오래전, 최초로 개업했을 당시 사용했던 '설농탕'이라는 이름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큰 무쇠솥 안에는 사골을 17시간 고아 기름을 말끔히 걷어내고 남은 뽀얗고 맑은 국물의 맛은 이 집의 자존심.
좋은 재료로 대중음식점에 걸맞은 단순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고 전성근 대표는 말한다. 원하는 고기양에 따라 보통 혹은 특을 선택할 수 있다. - 미쉐린 가이드 평가원
1호선 종각역 3-1번 출구를 나와 그대로 직진하다 보면 오른쪽에 빨간색 벽돌로 지어진 건물의 농협이 보이고, 정면에는 대도약국이 있습니다.
농협과 대도약국 사이에 있는 골목을 따라 30미터쯤 걸어 들어가면 100년 전통의 이문설농탕과 만날 수 있는데요.
저는 점심시간을 피해 3시쯤 이곳을 찾아갔습니다. 설농탕에 약주를 한잔 걸치신 어르신들께서 기분 좋은 모습으로 식당에서 나오시더군요.
시골에서나 볼 법한 정겨운 모습에 저도 모르게 눈길이 갔습니다. 이문설농탕은 인사동 골목 쪽에서도 찾아갈 수 있으나, 골목골목 길이 복잡하기 때문에 종각역 3-1번 출구에서 찾아가시는 걸 추천해 드립니다.
역시 점심시간이 지나서인지 한가로운 가게 안의 풍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점심시간 이후 브레이킹 타임이 없어서 조용한 가운데 편하게 설농탕의 맛을 볼 수 있었는데요. 우선 가격표를 한번 봐야겠습니다.
2017 미쉐린 가이드에는 설농탕 한 그릇에 분명히 8천 원으로 기록되어 있었는데, 그 사이에 천 원이 올라 9천 원이네요. 진짜 월급 빼고는 다 오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TV 바로 앞자리에 앉다 보니 공교롭게도 먼저 온 손님이 앉은 바로 뒷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방금 들어오신 것인지 설농탕이 나오자 상당히 심혈을 기울여 무언가를 열심히 제조하고 계셨는데요.
그 모습이 꽤 인상적이더라고요. 몰래 훔쳐볼까 하다가 당신 뭐냐며 귓빵맹이 한대 후려 맞을 것 같아서 참았습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설농탕 한 그릇과 저의 절친(?)인 소주를 일병 시켰습니다. 10초쯤 지나자 설농탕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김치와 깍두기, 파 그리고 보리차 한 잔을 바로 내어 주었습니다.
오랜만에 맛보는 보리차라 그런지 상당히 맛있더군요. 문득 어릴 적 한여름 뜨거운 더위가 쏟아질 때 길거리에서 얼음을 동동 띄운 달달한 냉보리차를 사 먹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추억 속을 헤매고 있는데 설농탕이 나왔습니다. 이문설농탕은 미쉐린 가이드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맑고 깨끗한 국물이 특징입니다.
어머니께서 해 주시던 아주 진한 사골곰탕과는 다르죠. 뒷맛이 개운하다는 점이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간이 전혀 되어 있지 않은 국물을 10번 정도 떠먹고 저 역시 제조에 들어갑니다.
후추와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추고, 지구상에 있는 파를 다 먹어 치우겠다는 일념으로 제가 좋아하는 파를 듬뿍 넣었습니다. 누가 보면 파국 먹으러 온 줄 알았겠죠?
그리고 다진 청양고추를 달라고 했지만, 파 외에 다른 채소는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 점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소고기는 총 3종류가 들어가 있습니다. 먼저 소주 일잔을 입에 털어 넣고, 양지머리와 깍두기를 올려 한 입 먹었습니다. 이미 익숙한 설렁탕의 맛이지만, 뒷맛이 깔끔하다는 것이 참 매력적입니다.
이번에는 김치를 올려 한 입 크게 먹었습니다. 저는 김치의 윗도리(줄기)보다 아랫도리(이파리) 부분을 더 좋아하는데요. 특히 저렇게 푸른녹색빛을 띈 아랫도리를 정말 좋아합니다.
일반 김치에서는 느끼기 힘든 묘한 맛이 있죠. 설농탕의 맛과 김치, 깍두기의 맛이 잘 어울렸습니다. 적당히 맛있게 익은 김치와 깍두기는 매우 훌륭했습니다.
두 번째 부위는 소머릿고기입니다. 양지머리는 육수를 낼 때 오래 삶아서인지 조금 뻑뻑했지만, 머릿고기는 특유의 쫄깃함과 고소함이 그대로 살아 있었습니다.
식사가 아닌, 소주를 한잔 먹으러 온다면 소머릿고기를 안주 삼아 마시면 두세 병은 거뜬할 것 같더군요.
드디어 문제의 그 녀석이네요. 직원분께 순대 간처럼 생긴 이 녀석의 정체를 묻자, 소의 '비장'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딱 한 점이 들어가 있었는데요. 한 점만 들어있다는 것은 그만큼 귀한 특수 부위라는 뜻이겠죠.
비장한 각오로 비장의 맛을 본 순간 그 맛이 너무 비렸고, 진짜 내장을 먹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비위가 약하신 분들은 바로 뱉어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맛과 식감이 별로였습니다.
저는 비위가 센 편임에도 불구하고, 비장의 비린 맛을 지우기 위해 소주를 연거푸 두 잔이나 들이켜야만 했습니다.
아무튼, 소 비장의 충격을 벗어나자 다시 안정적인 맛으로 돌아오더군요. 그리고 위의 사진을 보시는 것처럼 설농탕 속에 깍두기나 김치를 담가두었다가 먹으면 살짝 익어서 색다른 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100년 전통의 이문설농탕의 맛을 보았는데요. 설농탕 한 그릇의 양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평소에 많이 드시는 분들은 보통보다 양이 많은 특으로 시켜 드셔야 배부르게 드실 듯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문설농탕의 맛을 평가하자면 아주 야무지게 끓여 내어준 깔끔한 설렁탕의 맛이었습니다.





